Culture
'나'의 세계에 살길 원한다.

권철

‘나’의 세계에 살길 원한다.

 

영화 “미스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남들과 다른 부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장애가 있거나, 관점이 다르거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은 항상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멸시당히기 마련이다.

 

집단은 그런 사람들에게 같은 구성원이 되길 바라고, 응원하며, 재촉한다.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사회화에 목적을 두고 있으며, 결말은 늘 그렇다. 노력하는 주인공과 주인공을 포용하는 주변인물들이 손을 맞잡으며 막을 내린다.

 

누구도 화를 내지 않고,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다. 완벽한 결말이며 행복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나의 집단은 착한 곳일까?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집단은 울타리며, 요람이었다. 많은 교육과 관계 설정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고생은 당연히 미래로 유예시킬 수 있었다. 착실하게 배운다면 지금처럼 어렵지 않게 어른이 될 수 있으며 잘 먹고 잘 사는법도 가르쳐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집단들에 속하기 시작하면서 문득 의심이 들었다. 내가 속한 이곳은 말그대로 좋은 곳일까. 착한 곳일까. 나쁜짓을 하는곳은 아닐까. 매 순간 확신하기 어려운 믿음을 안고 안위와 불안 때문에 집단을 붙잡고 놓지 못한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이른바 ‘우리’ 는 ‘차이’가 가져오는 불편함과 고뇌를 사실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오해와 갈등이 생기고, 차별과 폭력이 수반된다. ‘차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동반하기에 배척은 더욱 필사적일 수 밖에없다.

 

진실한 ‘나’의 세계

 

 

 

이 문제에 대해 팀 버튼은 항상 ‘회의적’ 이길 권장했다. 두려움은 겉으로 드러나는 기괴함으로 표현하였는데, 태생적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집단에 속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그렇게 그려냈다. 그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반드시 구성원이 될 필요가 없음을 넌지시 읊조린다.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어렵게 열어젖힌 성문을 다시 한 번 제 손으로 걸어잠군다. 너무나 짧고, 간단하게 외면당하고 버려졌다. 있는 그대로 무채색이던 에드워드의 세계는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찬 유채색의 세계 가운데서 오히려 순수했기에 이질적이었다.

 

팀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더욱 몰입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인다. 늘 의심하고 고민해야할 ‘우리’의 세계보다 ‘나’의 세계가 더욱 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이 아닌 나를 향한 결말

 

 

 

올해 개봉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이러한 관계 가치관을 나름 건강(?) 하게 드러낸 영화였다. 다분히 현실적인 기괴함이 가져오는 암울함, 슬픔을 전제로 웃어야 하는 특유의 유머는 전매특허처럼 영화 곳곳에서 손을 흔든다.

 

‘별종’ 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살며, 심지어 목숨 까지 위협받아 ‘루프’ 라는 시공간에 스스로 갇혀 살아야하만 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설정은 마치 엑스맨의 ‘돌연변이 학교’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이 영화의 ‘별종’ 들은 그저 사회에 도움조차 주기 어려운 결핍자들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어떤 능력들은 멋지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대부분 능력은 그다지 쓸모도 없고 갖고 있어봤자 불편한 능력들이다.

 

기득권자들이 벌인 전쟁, 이 와중에 인종의 우월함을 사실처럼 믿던 2차 세계 대전. 집단은 그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은며 사라지길 원한다. 외부 세계에서 찾아온 주인공 ‘제이크’는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와 별종의 세계를 두고 고민한다. 어디서 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지 영화가 끝나는 내내 갈등한다.

 

확실한 결말은 있다. 결국 어느쪽이 더 행복할지 망설여지기에 결말은 타인이 아닌 개인을 향하며 끝을 맺는다. 사회화 과정속에서 더 큰 상처와 좌절을 겪는것보다, 자신 세계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존재로 변모하는 별종 아이들의 변화가 영화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악당을 위한 변명과 반성

 

나이를 먹어가면서 주변의 평가와 이야기들에 신경이 쓰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를 찾고 싶어질때도 많아진다. 왠지 ‘다른 나’는 죄인같고, 동색의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발악을 해본적도 많다.

 

이 영화에는 ‘할로게스트’ 라는 악의 존재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불로장생하고 싶어 벌인일로 인해 괴물이 되고 만 ‘할로게스트’라는 존재들은, 이제는 그저 다른 사람이랑 비슷한 모습이 되고 싶어 별종의 눈알을 빼먹고 살아야한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눈알들을 집어삼키며 살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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